이경손은 ‘한국 영화계의 초창기 영화감독’이자 극작가로 1930년대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탁, 전창근, 한창섭 등과 함께 ‘상하이파’ 영화인 그룹을 형성한 중요한 인물이다. 이경손은 1929년 초 상하이에 입성하여 1932년 상하이사변 이후 태국으로 탈출하기까지 3년의 세월을 상하이에서 보냈다. 현재 이경손의 한국 국내에서의 삶과 영화, 희곡창작에서의 성과는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연구되어 왔지만 상하이에 진출하여 활동한 3년 동안의 경력은 여직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단지 일부 학자들의 상하이파 영화인 그룹에 관한 단체적인 연구에서 그의 중국 행적이 간단히 언급될 뿐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본 논문은 1930년대 상하이에서 활동한 다학제적 예술가 이경손의 중국 신문학 인식과 중문 희곡 〈臺灣〉 창작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기존 연구가 ‘상하이파’ 영화인으로서의 그의 행적에 주목한 반면, 본고는 문학, 연극, 영화를 아우르는 그의 실천에 주목하여 상하이 체류기(1929-1932)를 ‘문화적 저항과 연대의 공간’으로 재조명한다. 이를 위해 당시 한국 언론에 기고한 중국 신문학 평론과 중국 좌익 문예지 『척황자』에 발표된 희곡 〈臺灣〉을 핵심 텍스트로 삼아 문헌 분석을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 첫째, 이경손은 김염, 김광주를 매개로 중국 좌익 문예계의 핵심 조직인 남국사(南國社) 및 중국 좌익작가연맹(左聯)과 접속하며, 톈한(田漢), 장광츠(蔣光慈) 등과의 교류를 통해 문학의 정치성과 예술성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려는 독자적인 신문학 인식 체계를 구축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이러한 인식은 중문 희곡 〈대만〉에서 구체적인 예술적 실천으로 나타났다. 작품은 대만 농민의 대나무 숲 강탈사건을 통해 식민지 수탈의 구조적 폭력성을 고발하는 동시에, 언어와 연극적 기법을 통해‘피압박 민족 연대’라는 보편적 저항 서사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경손의 상하이 시절 문학 활동은 단순한 해외 체험이 아닌, 식민지 지식인이 동아시아 좌익 문화 네트워크 속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의 사상을 결합하고, 이를 이중 언어 창작을 통해 실천한 ‘문화적 저항’의 표본으로 평가될 수 있다. 본 연구는 한국 근대문학사와 한중 문화 교류사의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식민지 문화 저항의 다층적 양상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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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aoling Jin
Guangyong Shan
Honghua Han
The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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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et al. (Tue,) studied this question.
www.synapsesocial.com/papers/69df2a4be4eeef8a2a6af8da — DOI: https://doi.org/10.31889/kll.2026.3.21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