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의 추정 대가야 왕궁지에서 문자가 찍혀진 토기 편이 발견되었다. 명문의 내용은 일부 아랫부분이 결실되긴 했으나 ‘大王’으로 읽어진다. 글자가 새겨진 형태가 좌서(左書)여서 토기는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 양식 토기에 大王이 새겨진 예는 하나 더 있다. 국립충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토기이다. 이로 보면 대가야에서는 대왕 칭호를 사용했던 것은 분명하다. 토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6세기 전반으로 보인다. 대가야의 전성기인 6세기 전반에 만들어져, 왕이 거처하던 왕궁지에서 ‘大王’과 관련된 의례 용기로 사용되다가 폐기된 토기 편이 출토된 것이다. 4~8세기 대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사용한 王과 大王 관련 사용례를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대가야에서 대왕의 등장은 두 가지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았다. 첫째는 주변으로의 영역 확장, 제도의 정비, 남제(南齊) 견사와 책봉을 통한 외교적 성공과 왕권의 안정을 확립한 군주가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는 불교를 통한 통치 이념의 강화와 확립을 꾀하는 군주의 등장이라는 배경이다. 특히 대왕이란 용어 자체는 불교와 관련하여 탄생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大王’ 칭호는 4~6세기 대 일본열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는 폭넓게 사용되었다. 대가야에서의 ‘大王’ 등장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6세기 전반 대, 대가야에서는 정치적 권력의 확대와 종교적 권위를 높여 초월적 위상을 확립하고자 하는 대왕이 탄생한 것이다.
Seoung-Ok Beack (Wed,)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