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경주 금령총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여, 신라 마립간기 후반에서 중고기초에 걸쳐 일어난 사회 변동과 지배 질서 재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헌 기록이 빈약한 마립간기의 역사에서, 경주 대릉원 일원의 적석목곽묘는 당대 권력구조의 동향과 정치 상황을 반영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이다. 그중에서 금령총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어린 피장자가 최상위의 묘제 속에 4단 입식 금관을 포함한 최고 수준의 금공위세품을 갖추고 안장되었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갖는다. 이는 피장자가 짧은 생애와는 별개로 선천적인 혈연 계승 원리에 기반한 특별한 신분과 지위를 소유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금령총의 입지가 마립간의 능으로 추정되는 봉황대에 근접한 사실은, 그 피장자가 마립간을 배출한 김씨집단의 핵심 일원이었음을 강조한다. 주인공은 그 신분과 지위를 확고하게 나타내는 금제 4단 입식 금관을 착용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인 차원에서, 5단 입식 금관이 제작되지 않고 4단으로 단절되는 현상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이어지는 사회 전환기의 중요한 정치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시기에 걸쳐, 금공위세품으로 혈연 신분과 정치 지위를 승인하던 전통적인 사여 체계가 국왕 중심의 집권력 강화 흐름 속에서 효용성을 잃게 되고, 그것을 골품제 · 관등제와 같은 새로운 행정제도가 대체하면서, 지배 질서 재편은 가속화되었다. 이는 기존의 김씨집단 핵심 지배층 차원의 ‘族의 원리’가 국왕을 정점으로하는 ‘家의 원리’로 재편되는 양상을 내포한다. 금령총은 단순히 사회 최상층 왕족 개인의 무덤을 넘어, 마립간기 전통적 질서와 중고기 새로운 질서가 공존하고 교차하며 신분과 지위가 집권체제 내의 지배질서로 일원화되던 전환기의 역사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대의 상징물이다. 아울러 고고 자료를 통해 문헌 사료의 한계를 보완하고, 신라 집권체제 정립 전후의 사회 변동 과정을 구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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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Ok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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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won Ok (Wed,) studied this question.
synapsesocial.com/papers/69a75e44c6e9836116a28b0d — DOI: https://doi.org/10.37331/jkah.2025.12.120.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