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엘당’은 공식 명칭이 아니었다. 일제 경찰이 만들어냈고, 반대 세력이 비난을 위해 활용한 용어였다. 이 용어는 1927년 12월 『동아일보』에 처음 나타났다. 그런데 애초에는 ‘엠엘당’이 아니었다. 1926년 3월 결성된 비밀결사인 레닌주의동맹을 지칭하는 ‘엘당’ 또는 ‘엘엘당’이었다. 이후 1928년 2월부터 시작된 조선공산당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Ml당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공표됐다. 이로써 ‘엠엘당’은 식민지 민중의 뇌리에 각인됐고, 점차 실체를 가진 용어로 변해갔다. 조선공산당 비주류 세력은 당 주류 세력을 비판하기 위한 용어로 ‘엠엘당’을 사용했다. 국제공산당에 ‘엠엘당’이 ‘당중당’이라는 내용의 보고를 제출함으로써 ‘엠엘파’는 반혁명적 파벌주의자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됐다. 당 주류 세력은 ‘엠엘당’의 존재를 부인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을 ‘엠엘파’로 부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딱히 부를 다른 이름이 없기도 했다. 1928년 ‘12월 결정’ 이후 나아가 1930년 국제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중앙기관’을 해체한 이후 ‘엠엘파’는 자신들이 분파주의자였음을 받아들였다. 반성과 자기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로 끝나지 않았다. 소련에 남아있던 옛 ‘엠엘파’ 성원들은 스탈린정권의 숙청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엠엘파의 수장’으로 지목됐던 양명을 위시해 많은 한인 혁명가들이 숙청됐다. 죄명은 ‘반혁명 단체 참가’였고, 그 ‘반혁명 단체’는 바로 ‘엠엘파’였다.
Sangwon Yun (Sat,)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