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징주의의 대표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서사시 「열둘」(Двенадцать)(1918)과 한국 개화기 시인 오장환의 장시 「전쟁」(戰爭) (1934~1935)에 각각 형상화된 여성 형상의 의미적 콘텍스트의 유사성은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두 시 모두 공통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와 유린에 대한 냉정하고 가차 없는 시인의 성찰이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로 나타나는 여성의 형상 속에 집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둘」의 “카치카”(Катька)의 형상과 「전쟁」의 “처녀”(處女)의 형상의 의미에 대한 고찰은 나아가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에 갈라져 있지만 동시대를 살며 았던 알렉산드르 블로크와 오장환의 세계관과 예술관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한다. 블로크의 “인간화의 3부작”(трилогия вочеловечения)의 길은 그의 창작에 나타나는 여성 형상에 대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블로크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성형상들은 테제-반테제-진테제의 각 단계마다 그가 체험하는 세계상이며 그와 여인과의 관계는 곧 그의 세계체험이다. 이처럼 블로크가 보여주는바 세계상의 상징이며 현실 인식의 방법으로서의 여성 형상은 한국의 시인 오장환에게서도 매우 유사하게 나타난다. 여성성은 오장환의 시를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본질적인 것 중의 하나이며, 따라서 그의 시에 나타난 여성성의 규명은 그의 현실 인식 방법에 대한 규명으로 이어진다. 근대문명의 어둡고 무서운 현실 속에서 죽음의 본능에서 생명의 본능으로의 전환이라는 두 시인의 시적 발전의 유사성은 또한 이들의 보다 근본적인 예술관에 의해 뒷받침된다. 데카당스의 “서정의 푸른 감옥”으로부터 반테제 시기의 환멸과 좌절을 극복하고 진테제의 “(커다란) 세계”와 “범인(凡人)”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시인에게 부여된 “인간됨”의 과제에 대한 각성이었다. 오장환 또한 전통문학의 필연적 단절과 근대를 위한 새로운 문학형식의 창조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고민 속에서 신문학이 “진실로 인간에서 입각한 문학, 즉 문학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문학의 길”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시인이나 작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될 필요가 있”으며 시인으로서 “기꺼이 인간의 의무를 이행하기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인식을 통해 데카당스적 절망과 무기력으로부터 생명의 지속으로 나아간 오장환의 길은 블로크의 “인간화”의 길과 너무도 닮아 있다. 블로크의 “카치카”의 형상과 오장환의 “처녀”의 형상은 예술가에 앞서 먼저 인간이고자 했던 이 시인들의 시선이 볼셰비키 혁명과 만주사변이 폭력의 은폐를 위해 앞세운 구세계의 타파와 근대화라는 명분의 무의미성과 그 너머에 있는 보통 인간의 고통을 포착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Jhee Won Cha (Tue,)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