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혜순의 1990년대 시를 중심으로 ‘소음’이 주체의 파산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와 질서에 균열을 내는 양상을 논의한다. 최근 신유물론과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이 비인간 존재의 행위성에 주목하여 연대와 공생에 치중한 나머지 체제 비판의 동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자본주의 체제가 인준하는 매끄러운 관계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질서로서의 소음에 주목한다. 김혜순의 시에서 자본주의 도시의 표상인 서울은 생산과 소비가 무한히 반복되는 폐쇄된 순환 구조의 소화 기계로 형상화되며, 여기서 시적 자아는 발화의 주권을 박탈당하여 고립의 상태에 이른다. 고립된 자아는 내부에 기식하는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부터 통제 불가능한 소음을 수신한다. 자신의 내부에 기식하는 다른 무언가에 의해 자아의 몸은 소음이 드나드는 비인칭적인 입체교차로의 지대로 변모한다. 비인칭화된 자아의 내면은 불가청 데시벨의 소음으로 공명되는 ‘온몸-귀’로 변형되고 구부러진다. 이러한 변형은 동질성에 기초한 친밀함이 아닌 이질성을 공명하게 하는 외밀한 공동성을 생성하게 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교환 법칙을 위배하는 무(無)의 공간을 창안하며 시스템 내부에 끊임없이 비질서의 구멍을 내는 전복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이처럼 김혜순의 시에 나타난 소음은 1990년대에서 발원하여 이후에 발표된 시와 시론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특히 자아의 자리를 타자에게 양도하는 주체의 불능과 수동성의 에토스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소음은 김혜순의 시에서 정치적 전복성의 원형으로 기능한다. 이는 인간 중심적 연대를 넘어 체제와 질서가 포획할 수 없는, ‘비어 있는 광장’의 공명이라는 김혜순 시의 고유한 문학적 역량에 대한 주요한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Han et al. (Tue,)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