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의 국호가 ‘朝鮮’에서 ‘大韓’으로 변경된 역사적 전환점을 중심으로, 기자조선설의 부정 과정을 고찰하였다. 조선 왕조는 건국 초기에 기자조선설을 삼조선체계의 하나로 수용하고, 국가의 정통성 확보 및 대명 관계 정당화의 핵심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중국 천자에 의한 책봉 제후국을 상징하는 국호 ‘조선’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大韓’ 국호가 채택되었는데, 이는 청일전쟁 이후 사대 관계 단절과 더불어 만국공법적 근대 국제 질서에 편입하려는 의지를 담아 주권 독립국가를 명시하는 새로운 제국 개념을 표출한 것이었다. 한말 교과서에서 기자조선을 중원 왕조와 대등한 독립국으로 묘사한 것은 전통적인 기자조선 인식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역사관의 발현이었다. 이후 신채호의 『독사신론』(1908)을 기점으로 기자조선설은 본격적인 비판을 받게 되었다. 1919년 임시정부에 의해 ‘대한’ 국호가 재채택되면서 기자 명분론이 종결되었으며, 근대 역사학의 비판적 방법론을 통해 그 전승의 내적 모순이 학문적으로 극복되어갔다. 특히 정인보와 이병 도가 『위략』과 『삼국지』 기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준왕이 기자와 무관한 고조선의 왕임을 실증한 것은 기자조선설뿐 아니라 삼한정통론까지 극복하게 한 근대 역사학의 중요한 성과였다. 동 시기 일본 및 중국 학계에서도 각기 다른 정치적 배경 속에서 기자조선설을 긍정 또는 부정하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해방 이후 남북한이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이라는 국호를 채택하였으나, 기자조선을 부정하는 인식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궁극적으로 기자조선설의 부정은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근대 역사학의 비판적 방법론과 국제 정세 변화가 맞물리며 형성된 인식 전환의 결과였다. 이러한 전환은 ‘대한’이라는 국호채택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자주적 역사 정체성과 국가 정체성이 통합되어 제도화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처럼 기자조선설의 부정과 ‘대한’국호의 선택은 근대 민족 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며,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Won-chin Cho (Wed,)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