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기원전 3~2세기 확인되는 중국계 망인의 고조선 유입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秦의 대외 확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요동외요의 성격과 설치 목적을 분석하였다. 요동외요는 진이 통일 이후 요동군의 故塞를 넘어 새롭게 확장한 영역에 설치한 시설로 이해된다. 문헌과 간독에 보이는 요의 용례에 따르면 요동외요는 변경의 수비와 더불어 자국민 이탈(邦亡)의 기준이었다. 당시 진은 통일 전쟁과 장성 축조 과정에서 주민의 이탈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진이 고조선 지역에 요동외요를 설치한 목적은 변경의 수비를 비롯해 통일 후 혼란과 장성 축조 과정에서 나타난 자국민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진말한초의 혼란기 속에서 고조선으로 유입된 망인과 그에 따른 위만의 집권 과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요동 · 길림 · 서북한 지역에서 출토된 秦 · 魏 · 趙의 명문 무기류를 분석하였다. 각 명문 무기류의 특징을 종합할 때 진 · 위나라 무기류의 사용 주체는 진의 군사적 활동, 조나라 무기류는 전국시대 말 망인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진 · 위 무기류의 주체는 변경 수비에 동원된 군사로서, 이들이 혼란 속에 망인이 되어 무기류 등을 매납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요동외요(상하장)의 기능은 위만이 망명 후 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요동외요는 중국계 망인과 고조선의 토착 세력이 혼재하던 공간으로 위만은 이 지역을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기반 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집권할 수 있었다. 끝으로 위만조선 시기 망인의 유입이 한의 침공 명분으로 작용했음을 밝혀보았다. 우거왕 대 한 무제가 제기한 망인 문제는 당시 흉노와의 관계 등 한의 대외 전략 속에서 중요한 현안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거왕이 망인을 적극 받아들인 것은 한의 침공 명분이 되었다. 위만조선 시기 유입된 주된 망인은 제와 연 지역 출신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제 지역 망인의 유입은 王仲의 사례나 위만조선 말 확인되는 尼谿相 參의 존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한초 제 지역의 불안정 등의 사유로 위만조선 지역으로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 지역 주민 역시 相 路人 등의 사례가 보이는데, 이 시기 연 망인의 유입은 흉노에 의한 지속적인 공격과 군현 설치 공역으로 인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파악된다. 결론적으로 중국계 망인의 유입은 고조선의 인적 구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동과 대외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Gi-min Kim (Thu,)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