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고구려 초기의 中畏大夫가 中裏大夫의 와전으로 고구려 근시직의 초기 형태라 보고, 그 형성 과정과 성격에 대해 다룬 것이다. 중리대부는 당시 고구려 근시조직의 수장으로서 왕과 혈연, 지연 관계가 있는 측근 인사가 우태 이상의 官을 받고 임명된 관직이었다. 중리대부의 휘하에는 왕의 자체 세력 기반 출신 인적 집단과 각 那部에서 사자 이하의 관을 소지했던 중소 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왕은 이들 근시 집단을 바탕으로 상위 지배층인 大加에 대한 정치력의 우위를 확보하였고, 근시 집단은 왕의 후원을 통해 정치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상을 시종하는 하위 그룹(人)과 정치 자문 등을 행하는 상위 그룹(臣)으로 나뉘며, 삼국지 고구려전에 가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된 使者, 皂衣, 先人은 상층 근시 집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한편 중리대부의 명칭 가운데 대부는 外來官인 漢의 大夫를 고구려의 사정에 맞게 차용한 것으로, 국정 운영을 논의하는 상위 爵이자 군주의 근시관으로 간언을 했던 職으로서의 성격이 포함된 것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중리는 고구려 근시직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방위명 5부의 성립과 관련이 있다. 방위명 5부는 고국천왕 대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왕궁은 中部에 위치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고구려 왕궁 내 왕의 사적 영역으로 볼 수 있는 구역은 다음 왕인 산상왕 대부터 확인된다. 그러므로 중리는 중부를 전제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중부 안에서도 안쪽(裏)에 위치한 영역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만 중리대부의 등장은 중리의 형성보다 앞서는데, 이는 공간의 형성 이전에 가신 집단의 형성이 선행하고, 왕과 가신 집단의 親疏 정도에 따른 물리적 거리의 구분이 이루어진 다음에 중리라는 공간이 설정되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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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o Lee (Wed,) studied this question.
www.synapsesocial.com/papers/69a75dcec6e9836116a280aa — DOI: https://doi.org/10.37331/jkah.2025.12.120.379
Gyu-Ho Lee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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