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385년 고구려의 요동군ㆍ현도군 공격과 이를 전후한 요동 지역의 인구이동을 살펴본 것이다. 고구려의 공격은 前秦의 쇠퇴와 後燕의 흥기 속에서 요서 · 요동 지역에서 발생한 힘의 공백을 포착하여 추진된 것이었다. 이를 전후해서 크게 두 집단이 이동하였다. 첫째 공격의 결과 요동군ㆍ현도군의 1만이 고구려의 영역 안쪽으로 이주하였다. 다수는 군현민이었는데, 전쟁 포로로 잡혀 강제이주된 것이다. 일단 국내성으로 끌려갔고, 노비와 같은 처지에서 국가적인 필요에 따라 처분되었다. 공 · 사노비 또는 특수 직역에 분배ㆍ배치되었을 수 있고, 신민으로 국내성과 그 주변 지역에 집단 이주하였을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구민보다는 열악한 처지였다고 생각하였다. 둘째 유주 · 기주 지역의 민이 고구려로 이주하였다. 전란에 따른 流民으로, 이주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半강제적 이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육상이든 해상이든 요동지역을 경유하였을 것으로, 이동은 험난하였다. 노비로 매매되기도 하였고, 무장집단을 구성하여 투쟁하기도 하였다고 보인다. 고구려는 생존의 위기에 몰린 일부 유민을 수용하였다. 요동군 · 현도군의 남녀 1만을 강제이주시키며 발생한 인구의 공백을 유민으로 보충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유민의 정착은 쉽지 않았고, 열악한 처지에서 구민보다 차별받았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후연이 안정된 이후 유민을 초무하자 일부는 호응하여 이탈하였다고 풀이하였다. 민의 이탈은 요동 지역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었다. 정책의 개선과 제도의 정비가 예상된다. 385년 전후 요동 지역의 인구이동은 그와 같은 변화의 초입에 위치한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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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Bin Lee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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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Bin Lee (Wed,) studied this question.
synapsesocial.com/papers/69a75debc6e9836116a2839f — DOI: https://doi.org/10.37331/jkah.2025.12.1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