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국혼(國魂)’ 개념을 중심으로 백암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의 민족주의 사상의 내용과 의의를 검토하는 데 있다. 대한제국의 언론에서 처음 국혼이라는 말이 출현한 것은 1904년 무렵이었다. 당시 이 말은 량치차오의 중국혼이나 일본의 무사도, 대화혼의 영향으로 상무정신, 민족의 주체적 정신 등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1906년을 전후하여 국가를 의인화하여 사람처럼 혼백을 갖춘 존재로 상상하고, 또 박은식을 비롯한 지식인들에 의해 ‘국가일족’ 담론이 확산하면서 1908년부터는 인격화한 국가의 혼이자 일족이 핏줄을 통해 공유하는 영원한 생명 혹은 정신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이로써 국혼은 국백이 사라진 뒤에도 허공을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이천만 조선인의 혈통과 뇌수에 각각 보존되어 이들이 모두 멸종하지 않는 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최후의 보루를 마련했다. 박은식에게 국혼은 단순히 ‘한족(韓族)’ 또는 ‘오족(吾族)’이라는 혈연공동체의 집단적 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인류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같으며, ‘교(敎)’는 그것에 기초하여 성인이 후세 인류에게 드리운 보편적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박은식은 동아시아의 성인으로 공자를 꼽았고, 한국의 국혼의 참된 의미는 장구한 기간 그 교를 신봉한 끝에 마침내 고유한 국교(國敎)가 되고 족성(族性)을 이룬 데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한국통사(韓國痛史)(1915)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1920)를 역사 속에서 국혼의 존재를 실증하기 위한 문헌이라는 관점에서 재검토했다. 국혼에는 한국의 고유하면서도 우월한 문명이 마치 오늘날 생명과학에서 말하는 유전적 코드처럼 모든 한국인의 개체 안에 핏줄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고, 이는 한민족이 단순히 생존과 독립의 추구를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와 문명을 선도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박은식의 국혼 개념은 문명주의의 보편성과 혈연공동체의 배타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Jong Hak Kim (Wed,) studied this question.
Synapse has enriched 5 closely related papers on similar clinical questions. Consider them for comparative con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