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조선 후기 종이 제조와 조달 체계의 변화 양상을 검토하였다. 특히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地方紙所의 복설과 사찰 제지업의 운영 실태를 살펴보았다. 기존 연구는 관영수공업의 해체와 민영화, 그리고 사찰 제지업의 수탈적 성격을 강조해 왔으나, 18세기 이후 지방지소의 복설과 사찰지소의 존속 양상은 이러한 이해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18세기 이후 종이 조달은 사찰지소의 운영 재편과 지방지소의 복설이라는 이원적 구조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사찰 제지업은 일방적 수탈 구조에서 벗어나 행정적·재정적 변통을 통해 유지되었으며, 사찰들은 왕실 원당이나 紙地寺刹 귀속을 통해 자구책을 모색하였다. 각 기관은 官屯田 및 殖利 운영 등을 통해 종이를 조달하여 사찰의 제지 기반을 유지하려 했다. 대구, 울산 등 영남 지역의 주요 군현을 중심으로 지방지소가 복설되었다. 특히 울산 지소리의 사례는 폐사된 사찰의 제지 기술과 환경이 관영지소로 흡수·이전되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이러한 지소는 貿紙廳이나 紙倉과 같은 재무 조직과 연동하여 운영되었다. 그리고 각 군현에서는 結役과 紙保 배정 등을 통해 종이 조달의 재정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처럼 19세기에 이르면 종이 조달은 사찰에 대한 일방적 의존에서 벗어나, 각 기관이 직접 지소 또는 사찰지소를 관리하고 재원을 집행함으로써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물자인 종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였다.
Young-Rok Kim (Tue,) studied this question.